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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548
일 자
19.12.02 10:08:57
조회수
57
글쓴이
관리자
김인설교수, 국립극장 매거진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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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극장 : 장애인을 위한 예술교육>

 

파울 클레는 말했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라고. 이 문장에 담긴 의미는 예술이 무대에 오르는 극장에도 통한다. 공연이 시연되는 곳은 극장이다. 그렇지만 공연을 위해 반드시 극장이 필요하지는 않다. 길거리 공연을 비롯해 미술관・서점 등 장소에 구애하지 않고 어디에서나 공연은 이뤄진다. 따라서 극장에 무엇이 담기고,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는 중요한 이슈다. 극장은 역사적으로 고유한 사회적 의미와 역할을 지녀왔으며, 문명이 시작된 이래 공동체 구성원이 공유하는 상징적이며 필수적인 공간으로 기능해왔다.

극장의 역사가 오랜 유럽과 이를 계승한 미국・캐나다 등지에서 극장을 일종의 ‘시민 학교’로 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명칭 뒤에는 시민의 문화 교육에 기여하는 극장의 사회적 역할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내재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국민의 세금으로 극장의 설립과 운영을 지원하고, 이를 의무화하는 것도 바로 극장의 이러한 사회적 역할 때문이다. 그렇지만 극장에서 이뤄지는 ‘문화 교육’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유명 극작가 또는 연출가의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문화 교육’일까? 또는 관객으로서 극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집단적 예술 체험을 하는 것 자체가 ‘문화 교육’인 걸까?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예술을 제공하는 뮤즈의 공간인 극장은 좀 더 의미와 가치를 가진 ‘문화 교육’을 위해 무엇을 고려하고 선택해야 할까?

이 글의 서두에 파울 클레의 말을 인용했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예술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아마도 가장 잘 표현한 말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는 예술가의 시선을 빌려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타자의 시각으로 자신의 인생을 이해하기도 하고, 평소에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상황을 헤아려보고 공감하는 힘이 생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술이 깃든 극장에서 평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과 고민이 필요할까?

 

인클루시브 극장의 배경
이 글에서는 특히 극장이란 공간에서 보기 힘든 이들인 장애인을 위한 해외 극장의 사례를 소개하려 한다. 물론 국내 극장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극장이 제공하는 장애인 좌석 비율은 법정 기준치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 대부분이고, 장애인석은 무대 앞 또는 뒤쪽의 자투리 공간에 설치된 경우가 허다한 것이 사실이다. 2015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설립 이후 우리나라도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사실 사회 소수자인 장애인을 위한 공연과 극장은 아직도 물과 기름처럼 분리돼 있다.
서구 사회에서 인클루시브 극장Inclusive Theater, 포용적 극장의 역사는 꽤나 깊다. 그 이유는 서구 사회가 가진 역사적 배경과 ‘포용’이란 단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극장의 사회적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봤을 때 인권에 대한 발전과 극장의 발전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서구에서 인클루시브 극장은 초기에는 인종차별을 지양하는 것에서부터 성 소수자・여성·위기 청소년, 신체 장애인에서부터 지적장애인까지 다양한 소수자를 아우르는 극장의 형태로 발전해왔다. 현 정부의 비전이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점에서 볼 때, 예술 현장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회 소수자를 배려하는지는 정부 차원에서도 고민해볼 문제다.

장애인을 위한 인클루시브 극장의 형식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예술가로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극장과 장애를 가진 이들이 관객으로서 무대를 충분히 즐기도록 하는 극장이다. 첫 번째 접근은 장애를 가진 예술인들로만 구성된 방식과 장애 예술인과 비장애 예술인의 협업으로 진행된 방식으로 나뉜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나라에서도 에이블 아트able arts와 다양한 장애 예술인 단체 등을 통해 시도된 바 있다. 해외의 경우 학습장애인들과 협업으로 작품을 만드는 하이징스Hijinx, 1980년대 설립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극단인 그라이아이Graeae, 현대무용을 다루는 칸두코 댄스 컴퍼니Candoco Dance Company, 청각장애인 예술인과 관객 모두를 고려한 데프 웨스트 시어터Deaf West Theatre가 대표적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무대를 공유하는 극장도 중요하지만, 좀 더 색다른 시도를 한 영국 런던에 있는 극장들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 극장은 따로 장애인 전용 극장을 표방하지 않는다. 하지만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해 공연을 재가공해 ‘편안한 공연relaxed performance’이란 이름으로 극장에 올리고 있다.

 

특별한 이들을 위한 ‘편안한 공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간한 ‘2014년 장애인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장애인 수는 약 267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59퍼센트를 차지한다. 이 중 발달장애로 분류되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는 각각 207,704명과 19,868명이었다. 이 통계에서 주목할 것은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가 2011년에 비해 2014년에 가장 많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영국 또한 발달장애 아동의 수가 현저히 증가하면서 이들을 위한 공연을 제공하는 데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 이 흐름의 주요 배경이다. 영국의 유력 언론 매체인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극장협회는 2013년부터 폴카Polka와 유니콘Unicorn 어린이극장을 시작으로 영국 국립극장과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의 주도하에 이러한 움직임이 확산돼왔다. ‘가디언’이 주목한 한 가지 주요한 사실은 초기에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해 재구성된 공연이 공적 자금을 지원받는 공공극장에서 시작됐으나, 점차 민간 영역의 극장들이 자발적으로 이 흐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장르 또한 확장돼서 아동극이나 정통극이 아닌 문화산업으로 분류된 뮤지컬 ‘마틸다’ ‘라이온 킹’ ‘찰리와 초콜릿 공장’도 이들을 위한 ‘편안한 공연’으로 재구성돼 무대에 올랐다.

‘편안한 공연’의 주요 관객인 발달장애인을 우리는 사실 극장에서 거의 볼 수 없다. 같은 맥락으로 공연을 볼 때 갑자기 고함치거나,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대사를 따라 하며 돌발 행동을 하는 관객을 우리는 보지 못한다. 이는 이러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장애를 가진 아동이나 성인은 극장에 공연을 보러 오지 ‘않는 것’이 아닌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극장을 찾는 일은 비장애인에게도 물리적·경제적 수고가 따르며, 공연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습득이라는 전제 조건이 따라붙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달장애인과 그의 가족이 함께 공연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다. 이들이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데 역기능을 하는 발달장애 행동 때문에 그렇다. 예시로 발달장애 아동에서 문제행동의 유병률은 약 50퍼센트로 추정되며 문제행동의 주된 양상은 자·타해, 상동행동(같은 동작을 일정 기간 반복하는 것), 기물을 향한 공격행동 등이다. 이런 행동들은 주 양육자인 부모나 다른 가족들에게 심각한 신체적·경제적·사회적·심리적 고통을 초래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해 재구성된 ‘편안한 공연’은 기존 공연과 몇 가지 다른 것이 있다.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공연에서 사용되는 조명과 음악의 밝기와 강도가 조절된다. 이들은 비장애인에 비해 외부 자극에 특히 예민하기 때문이다. 배우가 무대에 입장하기 전에 스피커를 통해 소리를 내거나 대사를 하는 방식도 관객을 당황시키지 않도록 재구성된다. 여기서 주요한 것은 공연의 본 내용이 이로 인해 희생되지 않도록 연출한다는 점이다.

 

‘편안한 공연’의 다른 점은 특히 극장 운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꽉 찬 객석은 오히려 심리적 장애를 증폭시킬 수 있기에, 극장은 절대로 객석이 반 이상 차지 않도록 하며 배석에 신경 쓴다. 또한 관객이 원하는 경우, 자유롭게 극장 안을 드나들 수 있도록 통로의 불을 어둡게 밝혀놓는다. 극장 바로 밖에는 ‘칠아웃Chill-out’ 구역을 만들어서 공연으로 인해 과도하게 흥분한 관객이 다시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하는 장소를 마련하기도 한다. 이곳에는 비디오로 공연을 계속 관람할 수 있거나 자신의 세계 안에서 침착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도구를 마련해 공연과 연결이 지속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공연의 재구성과 극장의 물리적 운영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바로 극장 직원이 관객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훈련이다. ‘편안한 공연’이 오르는 극장의 매표소 직원과 안내원은 특별교육을 통해 관객의 특수성을 인지하고 이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훈련받는다. 이는 단순히 콘텐츠나 그 콘텐츠가 시연되는 공간이 어떻게 구성돼야 하는지에 대한 일차원적 노력에 더해, 관객으로서 이들이 어떤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배려도 포함된 결과다.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이러한 ‘편안한 공연’은 단순히 발달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발달장애인의 가족과 무대에 선 예술가에게도 깊은 울림과 감동,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극장에서의 이러한 새로운 경험들은 우리 모두에게 예술이 갖는 본질, 보이는 것의 재현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들을 비로소 보이게 한다. 새로운 시각과 다름을 가진 이들과 예술 경험을 공유하는 것. 이러한 시간이 쌓여서 극장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은 무한대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모두를 위한 ‘시민 학교’로 극장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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